보통 유순한 사람, 쉽사리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보고 ‘온유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미가 급하거나 다혈질인 사람이 있고 천성적으로 기질이 느긋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성격 급한 사람이 온유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느긋한 성격이 화를 내더라고 반응이 조금 더디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화가 전혀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좀처럼 화를 안내는 사람도 있긴 하겠죠. 어떻게 화를 안낼까 싶지만 반대로 그럼 대체 왜 화를 내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 화를 낼까요? 너무 많을 이유들에 선뜻 하나의 답이 떠오르진 않습니다. 화가 나니까 화를 내는 것 같긴 합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 5:23)그러니 신앙생활을 수십 년째 해 온 사람이라면 마땅히 성령의 열매를 맺어 모두 온유해 질수 있다면 좋겠지만 경험상 꼭 그렇게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남들 보기에도 그렇고 자기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갈고 닦은 소양이 부족한 탓인지, 성령의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생각하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고 인정해 버리는 쪽이 속 편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단순히 어떤 성격이 바뀌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성격이 아닙니다. 성격은 대게 타고 나거나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고착화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성품이나 타고난 성격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태도’ 입니다. 그 반대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고집스럽게 불순종하는 태도이겠죠. 성경에서는 이를 ‘목이 곧다’ 라고 표현합니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출33:3)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 백성들, 그 중 바리새인들입니다.

“화난 사람치고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고집스럽게 분을 내어 품기를 그만두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에게든 분을 낼 정당한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성격은 바뀌지 않아도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태도는 되어지는 것이 아닌 지금 선택하는 것입니다. 무례히 행치 않고 성내지 아니하며, 대신 친절과 온유함을 지금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듯 타고난 성격과 기질이 어떠하든 부르심 받은 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내어 맡길 수 있습니다. 나의 의지를 꺾고 자신을 부인한 그 선택의 자리에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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