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를 한 편 읽어드리겠습니다.

시인 정현종의 <어떤 성서>라는 시입니다. 

등에 지고 다니던 제 집을
벗어버린 달팽이가
오솔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엎드려 그걸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주 좁은 그 길을
달팽이는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런 천천히는 처음 볼 만큼 천천히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서였습니다.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것은 한 걸음, 혹은 두 걸음이면 됩니다. 그러나 달팽이에게는 종일 걸어야 하는 하루 길일 수 있습니다. 나의 시선과 나의 생각으로 바라보면 한 없이 답답하고, 아둔해 보일 수 있는 달팽이의 움직임을, 시인은 옆드려 들여다봅니다. 엎드려보고, 들여다보아도 그 걸음은 느리기만 합니다. 들어서 옮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 만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잠자코 들여다 바라보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는 어떤 깨달음이 주어졌는지, 달팽이의 느리디 느린 움직임을 보면서 오늘 주어진 성서의 말씀으로 마음에 새깁니다. 어떤 성서 말씀이었을까요?

아무리 성서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해도, 엎드려보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마음에 남지 않습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설교를 통해 풀어 설명해도, 겸손히 엎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찮아보이는 것들도 엎드려보고,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린다고 시인은 알려줍니다.

오늘의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어떻게 와 닿는지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지도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달팽이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인의 마음으로 이 시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평소 듣지 못하던 음성을 듣게 될 것이고, 평소 보지 못하던 사람들의 사랑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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