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낯선 중년의 여성이 오셔서 이름 모를 식물을 준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먼저 보시고 받아두시고, 백전도사님께서 화분에 심어 두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교회에서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그 여성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뜸 자신이 준 식물이, 물을 주지 않아 말라가고 있다고 핀잔을 주는 게 아닙니까?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낯선 이에게 듣는 반말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제 우리의 몫인 것 같아요.”

말을 발설하고서야 말이 따뜻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언제나 일상에서의 생활신앙을 강조하고, 표정과 말에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돌이었음을 자각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최주훈목사) 말했습니다. ‘언어는 사유의 열매고, 존재의 집이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고 있든, 그것이 현재의 모난 ‘나’였습니다. 그분이 가시는 뒷모습을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변 나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다들 시들어 있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자주자주 물을 주며 관심을 쏟았는데,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화장실에서 호스를 가져와 물을 주었습니다. 듬뿍듬뿍 넘치도록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주변의 나무들이 이렇게 말라가고 있다’고…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라가고 있다’고…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갈해주셨는데, 나는 어떠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다시 한 번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주님을 닮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목마른 이들에게 주님의 생수를 부어 주십시오.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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