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수련회를 떠나면서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늦가을의 정취답게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미 절반 이상 떨어져버린 나뭇잎들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가지가 마치 코로나로 인해 비어 있는 교회의 모습 같아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여러해살이 나무들이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을 상기해봅니다. 여름내 붙들고 있던 나뭇잎들을 떨구고 겨울의 추위를 온 몸으로 맞이하는 나무가 외롭고 힘들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나무들이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무는 제 몸에 혈관처럼 흐르는 물을 비워내야 합니다. 물관을 통해 양분을 공급해왔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 속에서 얼어 터지는 동파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 몸 속에 물을 비워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몸줄기 속 물을 비워내면 할 일이 없어진 엽록소가 노동의 수고를 내려놓습니다. 초록빛의 활동이 멈추면 나뭇잎들은 노랗게, 빨갛게 숨어 있던 색깔을 드러내다가 결국에는 뿌리맡에 내려 앉습니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해충이나 진딧물의 침입을 막고, 흙 속으로 분해되어 다시금 나무의 양분이 되어줍니다. 물도 양분도 없이 생명 활동을 줄여야 하는 나무가 겨울의 무방비 상태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힘과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쓸쓸해 보이는 이 모든 과정은, 엄동설한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무의 지혜이며,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랍도록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덜어내고 비워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를 통해 다가올 혹한의 시기를 견딜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뭇잎들을 붙들고 있으면 잎들과 함께 얼어죽기 십상입니다. 힘든 시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생명활동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에게 품부되어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교회도, 가정, 나도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우리에게는 살아남는 DNA가 잠재해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른다면 만개할 봄과 여름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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