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곧잘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곤 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성질을 부르고 울어대기도 하고, 맘에 안 든다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크게 나무라지진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들도 누군가에겐가 말도 안 되게 온전히 받아들여져 본 경험이 있을까요? 있다 해도 기억너머의 일입니다.

어느새 인지 모르게 나이를 이 만치 먹고도 다 자라지 못한 어른된 아이처럼, 그 안에 상처와 결핍과 두려움은 그대로인 채, 사람들은 저마다 ‘인격’이란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부끄러움과 치부를 감추려 합니다. 교회여서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니까 더 감춥니다.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애를 써도, 뒤에 가서 흉보고 흉보일 일이 많은 우리들 입니다. 그러니 상처 투성이 모난 속을 드러내 보이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서로의 죄를 고백하는 건 어떨까요?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약 5:15-16) 그렇게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어 죄를 고백해도 좋을 곳이, 아니 그래야 할 곳이 교회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 라는 제목의 친숙한 찬양이 있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네, 연약함 그대로 사랑하시네” 라는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내 모습 이대로’,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깨어질 대로 깨어진 모습 그대로, 서로의 연약함을 부둥껴 안는 것이 이해이고 공감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1 ) 돈 없이 값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서로에게 나아갈 수 있는 교회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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