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화는 목적지에서 만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라고 이사야서는 예수를 증거합니다.
예수는 수난을 앞두고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요 14:27)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평화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 를 가능하게 할 평화가 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또 우리 자신과도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듯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그러나 다툼과 불편한 마음이 있는 이에게 평화를 빌 수는 없습니다. 내 안에 없는 평화를 남에게 빌어 줄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평화를 비는 우리가 다른 이의 평화를 깨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고통을 묵인 하느니, 스스로 고난 받기를 택함으로써 평화를 이루는 이 들입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약 2:15-16)하며, 그들의 필요를 모른 채 하는 자들이 아니라, 기꺼이 ‘강도만난 자의 이웃’ 이 되는 이 들입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평화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결과이며 그 열매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마 5:9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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