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노상강도의 이야기입니다. ‘늘리는 자’ 란 뜻의 이름을 가진 프로크루스테스에게는 자신에게만 꼭 맞는 철 침대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키가 모든 사람의 키에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눕히고는 그 사람이 그 철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자르고, 작으면 억지로 몸을 늘리는 식으로 자신의 침대에 딱 맞는 크기로 만듭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모두 잔인하게 잘리고, 늘려 죽고 말았겠죠.
우스꽝스러울 만치 섬뜩한 일이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저마다의 철 침대 하나쯤 품고 살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각자의 철 침대는 저마다가 가진 원칙이며 기준입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경험과 지식이 쌓여갈수록, 자신의 경험 바깥의 일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집니다. 경험과 과거에 집착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며, 자신이 만든 ‘자기확신’ 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는 겁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나의 기준 안에 가두려 들게 됩니다. 하나님도 예외 일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의 크기와 길이에 맞춰 하나님마저 줄이고 늘리려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됐든 내 생각을 앞세웁니다. 하나님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고집합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 (마 7:1-2 새번역) 결국 프로크루스테스는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룬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최후를 맞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가 했던 방식 그대로 머리와 다리가 잘려 죽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들이대는 것과 같은 잣대로, 같은 기준으로 우리를 심판하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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