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일과 계획이 어긋날 때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낙심에 낙심이 더하여, 더는 희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막다른 길에 들어선 듯 절망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절망의 반의어는 희망이고 소망이겠지요. 바라고 희망하는 바가 있기에, 그 희망이 좌절 될 때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일들일까요? 그 전에 우리가 바라고 희망하는 일들은 어떤 종류의 것들일까요? 우리가 가진 기도의 제목들 말입니다. 우리의 소박한 바람이라야 나와 내 가족이 소망하는 현실적인 목표를 이루거나, 최소한 나쁜 일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일 뿐이라 해도, 예기치 못한 불행들은 누구에게든 평범하게 찾아옵니다. 갑작스레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와 질병으로 일상이 멈춰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5)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를 잃고, 또 건강을 잃는 것으로 절망합니다. 그러고보면 절망은 무엇에 얽매어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절망의 끝자락이라 할 자살의 이유들을 들여다보면 육체적, 정신적 질병과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이 절망의 이유가 된다면, 그 말인즉 그것은 우리가 지금 쫓아 희망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들’ 이라는 말입니다.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 (고전 15:19)입니다.

그러나 절망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좌절될 수 없는 희망을 가진 이들입니다. 우리의 바라는 바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 비로소 절망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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