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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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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8 윤영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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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25~34

믿음

 

 

(마 6.25-34) 믿음 (20190908)

 

 

  1. 목회자로서의 초심

 

           불교 용어 중에 ‘초발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수행의 길에 접어들 때 가졌던 첫 마음, 즉 초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첫 마음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의 수행의 길, 인생의 길이 달라집니다. 만약 초심을 잃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향해 변질되었다고 말합니다. 성질이 변했다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왜곡되고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은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르게 지나갑니다. 제가 우리 일산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경험과 배움의 양도 많지 않고, 깨달음과 성숙의 깊이도 깊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아쉽기도 하고, 그렇기에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생각합니다.

 

           담임목사가 되면서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봤습니다. 얼마나 초심을 잘 지켜왔는가? 제가 담임목사 취임식을 할 때, 취임사를 어떻게 할까 참 고민을 많이 하면서 정리했는데, 그때 취임사를 다시 한 번 꺼내 봤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목회자로서의 초심이기에, 얼마나 잘 지켜왔는가를 점검하기 위해서 다시 들여다 봤는데, 어땠을까요?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했는데도 늘 그렇듯 아쉬움이 남고,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여러분도 저와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지나치게 큰 사랑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격스럽습니다. 다른 훌륭한 목사님들도 많은데 저를 불러주시고,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일산제일교회 교우 여러분들께도 또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교회건물을 건축하시고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오셨던 박권순 목사님께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갚아야 할 것들, 나누어야 할 것들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받은 것들이 너무나 많고, 크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일일이 갚아드릴 수는 없지만, 대신, 저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이 길 잃지 않도록 기도하며 돕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예수님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섬기는 것으로 받은 은혜를 갚아가겠습니다. 여전히 제 마음은 옹색하기 짝이 없지만, 성도들과 이웃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마음을 배우겠습니다. 혹여나 아직 성숙되지 않은 저로 인해 상처 받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저보다 더 큰 마음 보여주시면 그 마음 보고 그 크기만큼, 그보다 더 크게 제 마음을 넓혀가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영적 스승이신 한 목사님의 외침은, 저의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고, 저의 목회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라!”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목회를 하기보다, 목회적 삶을 살겠습니다. 그래서 김재준 목사님의 말씀처럼 ‘생활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남은 평생 이 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섬기고, 저의 삶을 곧 유언(김약연)으로 남기는 목회적 삶을 살겠습니다."

 

           짧지만 이 다짐 속에는 저의 신앙과 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비록 저의 목회자로서의 삶이 완숙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뜻이 꺾이지 않는 한 언젠가는 열매 맺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함께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서로가 연약하기에 오히려 서로의 약함을 더 잘 이해해주고, 감싸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완숙해져서 탐스런 열매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열매를 나누는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1. 믿음, 낙관주의적 확신

 

           그런데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지만, 그것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키가 큰 나무가 우듬지 끝까지 물을 공급하는 것은 삼투압의 원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하지요? 바람이 불어와서 나무를 흔들면, 그렇게 흔들림을 통해서 물이 우듬지까지 공급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의 흔들림이 바로 물을 끝까지 공급하는 펌프질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노력만으로 부족한 그 일을 하나님의 극적인 도우심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고, 우리가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거라는 확신, 우리의 바람과 희망이 끝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긍정적 확신, 이것이 믿음입니다.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 라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희망하는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 이것이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9:27-31)에 보시면, 눈 먼 사람이 두 명 나오는데, 이 두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이라면 우리를 고치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정말로 그 두 사람의 믿음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볼 수 있었을까요? (히브리서 11:1)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철저한 낙관주의적 확신입니다. 막연하게 ‘그저 잘 되겠지’ 하는 심정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낙관주의 말입니다. 지금은 비록 악이 성한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선이 승리할 것을 믿으면서, 오늘 선의 편에 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1. 믿음의 세 단계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인식의 전환’이고, 둘째는 ‘신뢰’, 그리고 마지막은 ‘행동’입니다.

 

1) 인식의 전환

 

           대부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아주 현실적이지요.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돈은 어떻게 모아야 할지, 직장에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매일 매일 반복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시야는 갈수록 좁아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십니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고 있던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인식을 전환시키십니다. (마 6:26-30) ‘아니, 예수님께서 현실감각이 없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부인도 없고, 자녀도 없고, 가족을 돌보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가족이 있으면,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으면 그렇게 하기 쉽지 않아!’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해야 할 일들을 몰라서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셨던 분이었습니다. 특히 먹고 사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너무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걱정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요?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기를 잘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문제에 집중해서 걱정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위기 뒤에 있는 또 다른 희망을 보는 사람들이 더 잘 극복해 나갑니다. 어제 박미애 집사님과 집사님의 남편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제 태풍으로 인해서 나무나 시설물들이 곳곳에 훼손된 것을 보면서, 걱정 어린 말을 하고 있었는데, 박미애 집사님 남편이, 오히려 잘 됐다는 거예요. 이런 일을 통해서 잘못된 부분이나 수리가 필요한 부분을 찾을 수 있고, 고칠 수 있지 않느냐는 거지요. 태풍으로 훼손된 문제에만 집중하면 걱정만 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 일을 통해서 안전망을 확충할 수 있고, 또 다른 발전적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고의 전환, 인식의 전환이지요.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문제에만 골몰하지 말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골몰하지 말고, 전복적 상상력을 가지고, 또 다른 희망을 바라보고,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면서, 그런 상상이 상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 신뢰

 

           그러한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

 

           저희 딸아이가 물놀이를 참 좋아합니다. 몇 번이나 물속에 빠져서 물을 먹고 해도 물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수영을 가르친 적도 없는데, 물 위에 누운 채로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영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경험을 통해 물에 뜨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지요. 몸이 물에 뜨는 것은 부력 때문인데, 가라앉으려는 힘과 물이 위로 밀어올리는 힘이 같아질 때 물에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영을 못하거나,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물에 뜨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부력의 원리를 깨우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물에 빠지면 잠깐동안 가라앉는 것 같아도,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기면 부력으로 인해서 뜨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힘을 빼지 않고 움직이면 몸이 물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단계에 있어서도 이런 부력이 작동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부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면 하나님의 부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려고 한다면 그만큼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깊은 인생의 바다라 할지라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면, 가라앉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예수님의 전복적 상상력이 마치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거기에 우리의 인생을 내맡기면 하나님께서 떠오르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확신이 믿음 아니겠습니까?

 

3) 행동

 

           전복적 상상력을 가지고 인식의 전환을 이루고, 하나님의 부력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의 첫 번째, 두 번째 단계라면, ‘믿음’을 완성하는 것은 행동입니다. 믿는 대로 행동하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즘 변권사님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전선우 장로님께서 다이어트를 해서 너무 날씬해졌다고 걱정을 하십니다. 그런데 장로님께서 다이어트 하시는 것을 보면, 의지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늘 음식량을 조절하려고 하는데 식탐이 있어서 잘 조절을 못하는데, 장로님은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생각하고는 생각한대로 지키고 계신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 보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신데, 말은 하는데 잘 지키지 않습니다. 당연히 체중관리가 잘 안 되겠지요. 다이어트가 몸에 좋고, 해야 겠다고 생각은 하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건강관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도 바로 이 ‘행동’에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는 것에 그칩니다. 믿지 못합니다.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행하지 않습니다.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하기는 행하는데 아주 가끔만 행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적은 것입니다.

 

           제가 초반에 담임목사 취임사를 읽어드렸는데, 그 중 저의 신앙과 신학의 근간이 되었던 세 분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라”

           김재준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생활 신앙인”,

           김약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삶을 유언으로 남기라”

 

           모두가 실천적 믿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라” 말씀을 읽는 것,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르지요. 그러니까 저마다의 삶의 자리 가운데서 자신만의 삶의 언어로 말씀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생활 신앙인”이 되는 것.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마치 직장생활, 가정생활, 학교생활… 그 중의 일부인 ‘신앙생활’, 주일에 나와서 하는 신앙생활, 이것 만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재준 목사님은 그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생활 속에서 신앙을 드러내라, 생활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약연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 삶이 곧 유언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의 인생이 끝날 때, 내 삶이 곧 나의 유언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1. 믿음 있는 사람

 

           도스토예프스키는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고 심장’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머리나 입술의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세상, 하나님께서 펼쳐나가실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한계를 뒤집어 엎어서, 전복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날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 힘이 아니라, 나의 힘에 더불어, 하나님께서 나를 뜨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부력을 의지하여 온전히 내 삶을 내맡기면서, 동시에 우리가 움직이는 것이 진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모여 있던 사람들을 향해서,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중요한 진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주실 것이다. 당장은 내 앞에 놓인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나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돈 버는 것,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 삶의 환경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처럼 여기지만, 가장 중요한 진리와 가치를 지켜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식의 한계에 갇혀 있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그 땅 가운데 통용될 하나님의 정의가, 마치 현실인 것처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철저한 낙관주의, 그래서 나에게서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내가 오늘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지식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오해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말만 하면 구원이 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고백이 구원을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대로 살아가는 것,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고백은 당연하고, 고백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이 있으십니까? 믿음이 크십니까? 우리는 매주일 모여서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고자 노력하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잊혀져버리는 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렇기에 자꾸자꾸 생각하고 되뇌어야 합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삶, 말씀을 삶으로 번역해내는 삶, 생활 신앙인이 되는 것, 그리고 끝내 우리 인생을 마감할 때, ‘내 삶이 곧 나의 유언’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믿음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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