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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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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8 윤영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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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3~16

기독교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마 5.13-20) 기독교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20190818)

 

 

  1.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로마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단순히 신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귀족으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실천해야 진짜 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할 때 빠지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하게 됩니다. 칼레의 시민들은 영국의 공격을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을 파견합니다. 항복할테니 살려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국은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칼레의 시민들은 혼란에 빠지게 됐습니다. 누가 대표로 처형을 당할 것인가?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사건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는 가문이 있습니다. 경주 최부자 이야기입니다. 경주 최부자 가문은 조선 4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사람들의 존경과 칭송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자라고 하면 그들에게 있는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함으로써 부를 유지했다면, 최진립 선생을 시작으로 400년이나 이어졌던 최부자 가문은 적정이윤추구와 정당한 재산증식을 통해 부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최부자 이야기에 대해서는 한번씩 들어보기도 했을텐데, 그 가문에 전해 내려온 육훈(여섯가지 가훈)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첫째,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말라. (진사는 정,품 아래 중급 정도의 직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 하지말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은 매입하지 말라.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은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대단하지요? 부와 권력은 쌓이면 쌓일수록 더 많은 것, 더 높은 자리를 탐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욕심인데, 최부자 가문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부자 가문은 부자이면서도 근검절약을 실천했고, 투철한 사회봉사 정신으로 나라와 이웃을 위해 재신들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면서,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활동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기도 했고, 일제시절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서는, 최부자 가문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200억원이나 되는 금액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료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부를 쌓았다고 해서 흥청망청 살지 않고, 또 재산을 자신들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빈민구제에도 사용하고, 나라를 위해 독립을 위해 거액을 지원하기도 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최부자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손해를 감수해가며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까 한 레스토랑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이었는데,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작은 분식점 같은 레스토랑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식아동 급식카드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이유를 알아봤더니 팔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급식카드를 발급받은 어려운 가정에게 카드를 받지 않고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급식카드로 한끼 식사할 수 있는 금액은 5천원인데, 5천원으로 한 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급식카드로 사먹을 수 있는 가맹점을 찾기도 어렵고, 기껏해야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사먹을 수밖에 없는데, 그 레스토랑 주인은 이를 알고 급식카드를 가진 이들에게 무료로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이 사회에는 이런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소식이 뉴스에 나오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받고, 칭찬받고,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삶이 빛된 삶이고, 소금의 맛을 내는 삶입니다.

 

 

  1. 맛을 잃은 종교, 빛을 잃은 종교

 

           오늘 말씀은 다른 게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이 세상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말씀이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낯선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선민의식이 있었고, 그들 자신과 세상은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세상 사람들은 변화시켜야 할 존재, 도움을 주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철저하게 구분하여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그렇게 싫어했고, 이방인과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던 것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는 소금이고, 너희는 빛이다.’ 말씀하시면서,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존재로,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이끌어갈 등불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세상과 자신을 구분지으며 세상을 속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죄악된 곳이고, 세상은 타락한 곳이라는 편견이 이기적이고 오만한 기독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오히려 기독교가 폐쇄적인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본이 되어야 할 기독교가 오히려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비기독교인들을 5000명을 대상으로 종교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1] 가장 높은 호감도를 보인 종교가 뭘까요? 불교가 41%, 천주교가 38%, 그리고 개신교가 3위를 했는데,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개신교가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적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그만큼 개신교가 이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비기독교인들에게 교회가 이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79.3%가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무너지고 난 후 페르시아제국은 유다 포로민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냅니다. 페르시아에 그대로 남고 싶은 사람은 남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돌아가도록 자유를 주었습니다. 페르시아가 유다 포로민들을 노예로 삼으면 좋을텐데 왜 돌려 보냈을까요? 그 이유는 페르시아의 종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관용성 때문에, 관용을 실천하는 것이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였기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포로민들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몽골은 매우 진취적인 민족이었지요. 우리나라도 몰골의 침략을 수차례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평화로운 민족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불교를 만났기 때문에!’ 진취적이고 폭력적이었던 몰골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평화로운 민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몽골 사회에 끼친 영향이 대단했다는 것이지요. 조로아스터교도, 불교도 이렇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데, 기독교는 어떨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종교,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왜 이렇게 사회에서 불필요한 종교가 되었을까요? 왜 이렇게 폐쇄적이고, 이기적이고, 심지어 타종교에 대해 폭력적인 그런 종교가 되었을까요?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초기 기독교는 어땠습니까? 약자들을 위한 종교, 빈자들을 위한 종교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양적 성장과 부흥만을 부르짖으며 부유한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돈 많은 사람,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이 교회의 핵심 멤버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안수집사나 장로와 같은 교회 운영에 관여하는 직분을 받기가 어려운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자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가난한 사람이 장로 되기가 더 어려워진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정의를 외치며 약자와 빈자를 대변해야 할 기독교가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원래 어떤 종교입니까? 세례자 요한이 길을 내고,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던 종교적 토대는 예루살렘이나 여리고와 같은 도심의 한복판이 아니라 변방의 갈릴리, 그 중에서도 광야였습니다. 모세의 야훼 종교 역시 광야에서 시작되었지요. 아무 것도 없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민중들을 돌보던 종교가 기독교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광야의 종교, 재야의 종교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기독교가 그런 야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목사님(김기석)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는 소금이 아니라 맛소금으로 변질되었다.” MSG를 듬뿍 쳐서 사람들에게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맛을 내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빛을 잃은 교회, 맛일 잃어버린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맛을 내는 교회, 예수의 빛을 비추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에서 소금이 되어라!, 빛이 되어라! 라고 말씀하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소금이 되는 것, 빛이 되는 것, 그 자체가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금이 있는데 그 소금을 사용하지 않으면 맛을 내지 못합니다. 등불이 있는데 그 등불을 사용하지 않으면 밝힐 수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소금으로서의 기능, 빛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안 되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목사가 되었다면 목사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장로나 권사, 안수집사, 또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직분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분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분을 받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에 따른 행함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되는 것, 빛이 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소금으로서 짠 맛을 내고, 등불이 되어 등경 위에서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소금으로, 빛된 존재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기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마5: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믿는 이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창39:5)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갔을 때입니다. “…주님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이, 주인의 집안에 있는 것이든지, 밭에 있는 것이든지, 그 주인이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 요셉 덕분에 보디발과 그의 모든 소유에까지 복이 미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 복이 이르고, 여러분으로 인해 부모와 자녀들에게도 복이 이르게 되고, 여러분들로 인해 고양시에 복이 이르고, 우리로 인해 대한민국에까지 복이 이른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복된 삶이겠습니까?

 

           칼레의 6명의 대표들, 최부자, 급식카드를 받지 않고 음식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갑시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 각자의 몫입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 각자가 고민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지침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말씀을 묵상했듯이, 팔복의 말씀을 기억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애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온유한 성품과 깨끗한 마음으로, 의와 평화를 구현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 이렇게 살아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도 교회와 기독교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손해를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높은 도덕적 의무, 그리고 신앙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때,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리고 우리 교회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소금과 빛으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489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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