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예수의 심장이 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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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윤영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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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12

예수의 심장이 뛰는 사람

 

(마 5.1-12) 예수의 심장이 뛰는 사람 (20190811)

 

 

  1. 말씀의 능력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어떤 것인지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기독교의 개론서와 같은 책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이자, 가장 핵심이 되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청년 몇 명에게 각자 전공에 해당하는 개론서가 뭔지 물어보니, 통계학과의 개론서는 수리통계학, 성악과의 개론서는 서양음악사, 스칸디나비아어학과의 개론서는 스웨덴어개론이라고 합니다. 그런 개론서를 공부해야만 전공하고자 하는 학문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더 깊은 학문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과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아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개론서에 해당하는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의 기본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 이 정도면 기독교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알고 계시겠지만, 부분적으로는 알고 있을 뿐, 복음서의 전체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특정 사건이나 대화의 내용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진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복음서의 사건들,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과 예수님의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깊이 알아가다보면 가슴이 뛰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다보면 말씀이 내 마음에 와서 울림을 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 있으시지요? 책을 보거나 무언가를 배울 때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깨달음의 즐거움이라고 하지요. 지식을 하나 더 얻었다는 지적 만족감이나,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특히 복음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행적과 그의 말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또 다른 설렘이 있습니다. 설교를 하기 위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다보면 그런 떨림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말씀의 은혜입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도 은혜가 있지만, 설교를 준비하면서 느껴지는 은혜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말씀이 주는 은혜가 커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것이 삶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읽을 때면 특히 그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기록한 지혜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 말씀을 읽으면 그런 떨림과 감동이 있을까요? 성경의 말씀이 아주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마치 부적처럼 말씀을 지니고 있으면 저절로 대단한 일이 일어나거나, 성경을 읽으면 저절로 안 풀리던 문제가 해결되고, 고민이 풀어지고, 병이 낫는 그런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는 독자들로 하여금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지만, 삶의 조건이 달라진 게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 관점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뀔까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시선과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은 산상설교(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복음, 하나님 나라 사역의 기본 가치가 무엇인지 말씀으로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예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고 구경꾼처럼 몰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5:1)은 몰려든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무심코 따라온 무리들과 제자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졌습니다. (마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그동안 성경을 풀이해주었던 서기관들과는 다른 권위에 그들이 놀랐다고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거기에 몰려든 모든 무리들이 제자가 되겠다고 결단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변화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무리들이 산을 올라갈 때에는 구경꾼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산을 내려올 때에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의 능력이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미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고, 2000년 전의 말씀이지만,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오르려고 합니다. 2000년 전에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이 시대를 놀라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여러 문제들을 풀어갈 해법이 이 말씀 안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삶에 산재해있는 많은 문제들을 풀어갈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죽은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나듯, 생명력 넘치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에 또 다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1. 복을 깨우치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설교하신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팔복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고,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조차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기에 별다른 비판 없이 이 말씀을 읽고 지나갈 수 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사실 이 말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비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는 말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의를 위해서 박해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에 정말 동의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처음 설교하신 내용이면 너무나 중요한 말씀일텐데, 예수님께서는 첫 설교에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로마의 압제 아래에서, 그리고 부패한 지도자들의 권력에 눌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경제적으로 도저히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는 빈궁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니, 지금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저 감내하고 인정하라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은, 언젠가 미래에 주어질 보상으로서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실제적이며 현실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복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듣고 난 후에 주어지거나, 혹은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른 결과로서 주어지는 복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복된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행복할 수 없다는 세상적 가치관과 또 그렇게 자신들을 규정하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지닌 복 있는 현실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슬피 우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이 지닌 참다운 복을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현실 속에 진주처럼 묻혀 있던 복을 꺼내어 들고서, 여러분도 복된 삶을 살고 있음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확산시키셨습니다. 세상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마치 정답처럼 알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방법,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진짜 행복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서는, 돈이나 권력, 명예가 진짜 행복의 조건인 것처럼 강요해 왔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들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를 겪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보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것들은 망설여지는 정도가 아니라 거부하고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가난함, 슬퍼함, 의를 위해 박해를 마다하지 않는 것들은 가능한 피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런 사람이 복되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1. 마음이 가난한 사람

 

           팔복 중 첫 번째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내용을 누가복음에는 마음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난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가르침이 원래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까울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 공동체에서는 어느 정도 부유한 사람이 공동체 내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급진적인 가르침을 조금 순화하여 마음의 문제로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작용이든, 경제적 문제이든 결국 핵심은 ‘비움’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비움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빌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기독교는 이런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네 명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 자신을 비우고 예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비우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의 자세라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비우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사를 하게 되면, 그전에 이사 올 때보다 짐이 더 많이 늘어나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 하나 짐을 싸고, 정리하다보면 때로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 여기 저기 놓여 있기도 하고, 쌓아두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이 채워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리하고, 버려야지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연륜이 더해가고, 신앙의 연수가 쌓여가면서 버리지 못하고 여기 저기 쌓아두고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만 붙들기보다, 미래에 대한 생각과 불안함을 붙들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구를 붙들고 있고, 때로는 남에 대한 미움과 원망까지 비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놓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비우지 못하고 살아갈까요? 예수님을 가르침을 100%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면, 예수님의 뜻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욕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비우지 않으면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비어 있는 그릇이 쓸모 있는 법입니다. 비어 있지 않고 온갖 잡다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면, 거기에는 예수님의 마음을 담을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귀한 금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이라도 그것이 그릇으로 쓰일 때 가치 있는 것이지, 장식품으로 남는다면 그릇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무엇으로 가득 차서 비우지 못한다면 그 그릇은 쓰임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값싼 질그릇이라도 그 안이 비워져 있으면 때와 상황에 따라 훌륭하게 사용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비어 있어 하나님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 무엇을 채울 것인가?

 

           그렇다면 그 빈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채우시겠습니까? 바라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이 말씀을 조금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반기 교육 주제로 정했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 다시 말하면, “예수의 심장이 뛰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면 어떨까요? 예수님의 심장이 나에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분 그 마음을 좀 느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뜨겁게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무리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모여들었지만, 제자들은 호기심을 넘어 삶의 방향을 바꾸려 했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예수의 심장이 뛰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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