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악마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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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8 윤영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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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1~11

악마의 유혹

 

 

(마 4.1-11) 악마의 유혹 (20190728)

 

 

  1. 도입

 

           오늘 이렇게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 나와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이 은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좋은 만남, 좋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좋은 나’입니다. 내가 먼저 좋은 마음으로 이곳에 나와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좋은 시간, 은혜의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옆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봅시다. 좋은 나를 만나서 좋으시지요? 오늘 이 시간이 모두에게 좋은 예배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기 전, 세례자 요한이 먼저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시험 당하심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험을 지혜롭게 잘 이겨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광야에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여러분,광야가 어떤 땅입니까? 메마른 땅이지요. 생명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턱없이 부족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나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나 왜곡들, 과장되게 덧칠해진 모습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광야에서는 그 허울을 벗어버리고 참 나, 참 자아를 만나게 됩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부모와 자식으로서 만들어진 나에 대한 이미지가 있지요? 그리고 직장에서 혹은 일을 하면서 생겨난 또 다른 나의 모습들, 교회에서 장로나 권사, 집사나, 목사와 같은 직분자로 지내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나의 모습들… 광야에 홀로 서게 되면 그런 가면은 필요가 없어집니다. 참된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정직하게 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광야에서 하나님 사역을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에 앞서 광야로 들어가신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참 자아와 직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곧게 가기 위해서 광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거짓과 허울로 자신의 사역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만들 영웅적인 페르조나에 동요되지 않고, 참된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 위한 결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광야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때가 묻지요. 세상의 많은 것들이 나를 바꾸어놓습니다. 세상이 나를 오염시키기도 하고, 스스로가 과장되게 자신을 포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벗어버리고, 솔직한 나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대충 흉내만 낸다고 해서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을 해야만 건강이 유지되듯이, 믿음의 훈련을 통해 건강한 신앙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금식을 통해 육신의 욕망을 비워내고, 참 자아를 만나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채우셨습니다.

 

 

  1. 시험

 

           그런데 악마는 그때를 노렸습니다. 40일동안 금식하며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있을 때, 그 연약한 틈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넘어뜨리려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시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성숙한 사람, 헌신된 사람, 준비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시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욥이 어떤 사람입니까?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최고의 찬사를 받은 사람 아닙니까? 이런 욥에게도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시험은 두 가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것은 시련과 유혹입니다. 시련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는 과정이고, 유혹은 사탄이 우리를 죄로 이끌어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두 가지는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시련은 우리를 성숙한 길로, 유혹은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을 만나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련인지, 사탄이 주는 유혹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런 영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앙의 가이드라인을 꺼내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가이드라인을 꺼내보면 이렇게 써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기!’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평소에 가이드라인을 숙지하지 않고, 훈련하지 않으면 그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평소 시험에 대비를 잘 했는지, 안 못했는지에 따라 대처하는 반응과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나게 됩니다. 평소에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잘 숙지하고, 그대로 훈련을 해왔다면 서둘러 대처할 수 있지만, 잘 숙지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런 긴박한 위기 상황에서 알고 있는 대로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어린이부, 청소년부 연합 수련회를 떠나게 되는데, 지금이 한창 여름수련회 시즌이지요? 이맘때가 되면 저의 학창시절이 생각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수련회를 갔었는데 위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수련회를 가면 제일 기대가 되는 것이 물놀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도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여학생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수영을 아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긴급한 상황이라 얼른 가서 그 아이를 잡았습니다. 그 후배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물도 먹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그런 상황에서 닥치는대로 아무거나 잡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붙잡더니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저를 내리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데리고 나올텐데, 계속해서 저를 내리 누르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평소에는 연약해 보이는 후배였는데, 얼마나 힘이 세던지, 꼴깍꼴깍 저까지 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깊은 곳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정신을 차리고 겨우 그 아이를 잡고 해변가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에는 뒤로 가서 옷을 잡거나, 목 부위를 끌어안고 뒤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요. 그만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숙지하고, 연습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1. 마음의 부요

 

           예수님은 이런 시험을 어떻게 풀어 갔을까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가 담임목사로 목회를 하다 보면, 마음이 쓰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그래도 아픈 손가락에 더 마음이 쓰이는 법이지요. 부모도 자녀를 키우다보면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자녀보다, 약하고 잘 못하는 자녀에게 먼저 마음이 가지 않습니까? 특히 우리교회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앞으로 위기가 찾아올 것 같은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 가정을 두고 아내와 함께 기도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로또라도 사서 당첨돼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이지요. 그만큼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예수님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 당시 로마의 압제 아래에서, 돈은 제대로 벌지도 못하는데, 로마황제에게 내는 세금, 지방세, 성전세까지 내야 했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종이나 노예로 팔려가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던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긍휼한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당장 하루 한 끼 먹을 것이 없어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제가 로또라도 사서 돕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당시 근동 지방 팔레스틴 사막에 굴러다니는 돌들을 모두 빵으로 바꿔서 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3절에 보시면 악마가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많은 돌들을 빵으로 바꿔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모두의 음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해결된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바뀔까요?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4절에,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이 없이 육신의 허기만 채워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질은 넉넉하고 먹을 거리 걱정 없이 살아가는 부유한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지 못한 채, 채워지지 않는 영적 허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리로 채우려고 하지 않고, 더 많은 물질로 아무리 채워봐야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참 인간됨은 육신의 배부름이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에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경제적인 위기, 먹고 사는 문제로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경제적 문제의 해결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 사회는 우리에게 이윤 창출이 모든 문제의 최우선 과제라고 하면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코메디언 김준현이 모 프로그램에서 그랬지요? “몸은 이래 보여도 마음만은 홀쭉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참 인간됨을 안다면 마음만은 부요합니다. 예수님은 자본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찾아가서 함께하고, 함께 웃고, 함께 나누며 인간됨의 허기를 채워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으로 참된 부요함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 나라는 함께 만드는 나라

 

           첫 번째 시험에서 보기 좋게 패한 악마는, 둘째 시험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예수를 유혹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는 전개되는 것이 참 풍자적입니다. 악마의 첫 번째 시험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답을 하셨습니다.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 (새번역)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러자 악마도 이번에는 성경을 인용하여 유혹을 합니다. 6절 중반부에,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 (새번역) “성경에 기록하기를…” 예수님의 대답과 똑같이 말합니다. 그러면서 (시편 91:1-2)을 인용합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그럴듯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다음 대답이 참 재미 있습니다.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무슨 말입니까? ‘야 악마, 너 성경에 그런 말씀 말고 이런 말씀도 있어. 이런 말씀은 안 읽어봤구나?!’ 예수님의 재치가 엿보입니다.

 

           두 번째 시험의 내용은, 악마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는, 뛰어내려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켜서 다치지 않게 하실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왜 거절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우러러보고 추앙하게 만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숭배할 대상을 찾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자본이 '스타 시스템'을 통해 대중들에게 숭배할 대상, 아이돌을 제공합니다. 연예계 스타, 스포츠 스타…이런 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대리 만족을 얻습니다. 종교계의 스타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 꼭대기에 서있습니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들의 추종자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헐리우드 영화처럼 어느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영웅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함께 그 나라를 꿈꿀 때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의 영웅성에 기대어 수동적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함께 신앙의 열정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그림자에 기대어 적당하게 신앙인 흉내만 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또 누군가 대리인을 세워 성전 꼭대기에 세우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수동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목사 한 명, 혹은 일부의 성도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함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권력에 대한 유혹

 

           악마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또 다시 유혹합니다. 이번에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말합니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9절) 힘과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대로, 예수께서 로마의 황제를 무너뜨리고 세계의 황제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선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끝없은 권력욕을 가진 또 다른 무리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과 권력, 무력으로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얼마 전 권력에 눈 먼 목사의 추락을 보았습니다. 직접 정치권에 개입하여 기독당을 만들어 이 나라를 기독교 신정국가로 만들려는 위험 천만한 계획을 드러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늘 낮은 자리를 찾으셨습니다. 낮은 곳에서 낮은 이들을 대변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가 목회자라면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통증에 관한 아주 의미 있는 이야기였는데요, ‘통증’이란 아주 특수한 감각이라고 합니다. 보통의 감각, 시각, 미각, 청각 등의 감각은 어떤 자극에 대해서 익숙해지게 마련입니다. 향수 냄새를 맡으면 처음에는 좋은 향이 느껴지다가 계속해서 맡게 되면 익숙해지게 됩니다. 시각과 미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통각, 통증은 익숙해지지 않고, 그런 통증이 반복적으로 몇 개월 지속되면 뇌에 영향을 미쳐서, 같은 자극이라도 더 크게 통증을 느끼도록 신경계가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인 본인도 아프면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선에서 진통제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사람의 권력에 대한 욕망 또한 통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자꾸 더 큰 권력욕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욕망의 수치를 줄이는 영적 진통제를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인디언의 늑대 이야기 아시지요? 나쁜 늑대가 힘이 센 것은, 나쁜 늑대에게 먹이를 많이 주어서가 아니라, 착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이 승리하는 것은 악을 선택해서가 아니라 선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우리도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10절,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사탄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은 내 안에 존재하는 사탄에게 하는 말입니다. 결국 이 말은 우리 자신에게 해야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든 나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나의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기시기 바랍니다.

 

 

  1. 결론

 

           우리 인생은 누구든 커다란 나무와 같습니다. 거목입니다. 그런데 뿌리가 얕으면 어떻게 될까요? 잔뿌리만으로 버텨내려니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말씀의 뿌리도 잔뿌리고, 은혜의 뿌리도 잔뿌리라면 크게 자랄 수 없고, 크게 자란다 해도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충분한 물과 양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영의 양식인 말씀을 붙들고, 생명의 생수인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세력은 언제나 우리를 오용하고 악용합니다.

           타락한 세상은 언제나 우리를 이용하고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활용하고 선용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말씀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과 유혹에서, 예수님처럼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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